이번 주에는 미술 작품들이 유난히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 또다시 캔 수프가 뿌려졌고,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전시 중이었던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이 산산조각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루브르 미술관이 모나리자의 얼굴에 립스틱이 그어지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것은 우연한 시기의 일치일까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Auctioneer Adrien Meyer selling Claude Monet's Nymphéas. Courtesy of Christie’s
1. 크리스티 홍콩의 새 시작, 그 결과는?
9월 26일, 드디어 크리스티 옥션이 새롭게 문을 연 홍콩 본사에서 첫 경매를 열었습니다. <20/21>이라는 타이틀로 미술시장에서 20세기와 21세기 사이에 제작된 가장 핫한 작품들을 거래하는 경매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20/21> 이브닝 경매는 크리스티 옥션에 안도감을 가져다준 것으로 보입니다. 93%의 경매 작품이 판매되어 판매 총액 약 1,600억 원을 달성했습니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 은 약 393억 원(2억 3337만 홍콩 달러)에 낙찰되어 예상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아시아에서는 최고가 기록을 세웠고, 빈센트 반 고흐의 <정박한 배들>은 약 422억 원(2억 5062만 홍콩 달러)에 판매되어 역시 아시아에서 최고가 기록을 세웠습니다.
관심을 모았던 김환기 작가의 1971년도 작품인 <9-XII-71 #216>은 약 95억 원(5603만 홍콩 달러)에 판매되었습니다. 예상가의 낮은 지점에서 낙찰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환기 작가의 거래 기록에서 세 번째로 높은 가격에 거래된 것입니다. 이학준 크리스티 코리아 대표를 통해 한국인 컬렉터가 구매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데요. 현재 국내 경매 시장 최고가 1위부터 10위가 모두 김환기 작가의 작품인 만큼 아시아 미술 시장이 믿을만한 작품임을 증명해낸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배 작가의 <불로부터 -Do 5>는 약 2억8000만 원(63만8000 홍콩 달러)에 낙찰됐습니다.
초고가인 20세기 작품들의 입찰 경쟁이 다소 잔잔했다면, 몇몇 현대 작품들은 뜨거운 경쟁적인 입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로널드 벤츄라의 작품은 이전 최고가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무려 62억원 (3667만 홍콩달러)에 판매되어 큰 관심을 끌었고, 루시 불의 작품 역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약 32억 원(1852만 홍콩달러)에 판매되어 작가의 전세계 최고가 기록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모든 현대 작품이 구매자를 찾은 것은 아닙니다. 헤르난 바스의 작품과 크리스티나 퀄스의 작품이 판매되지 않아 실험적인 구매보다는 지속적인 가치에 집중하는 보수적인 구매 패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티 옥션은 홍콩에서 여는 새로운 시작에 힘을 싣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5만 평방피트 규모의 본사에 엄청난 투자를 한 바 있다고 지난 뉴스레터에서 알려드렸었지요. 크리스티 옥션의 아시아태평양지역 20세기 및 21세기 미술 공동대표인 크리스티안 알부는 지역적 요인과 코로나19 이후 시장 조정으로 인한 중국 본토 수집가들의 구매 둔화를 반영해 보수적인 접근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알부는 모든 고가의 작품이 안전과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3자의 보증 guarantee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좋은 작품을 유치하고 안전하게 판매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고품질의 작품을 전면에 내세우려는 노력은 변화하는 경제 상황 속에서 신중한 투자가 중요해진 컬렉터들의 심리를 파악한 것으로 보입니다.
Protesters at the National Gallery in London. Courtesy of Just Stop Oil
2. 고흐의 해바라기 수난 시대
2022년 10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1888)를 훼손하려고 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저스트 스탑 오일 그룹의 활동가 피비 플러머와 안나 홀랜드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반 고흐의 작품에 캔에 든 수프를 던지고 그 아래 벽에 접착제로 손을 붙이는 행동으로 논란을 일으켰었는데요. 작품은 훼손되지 않았지만 액자는 약간의 손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죠.
9월 27일, 크리스토퍼 헤히르 판사는 이 두 사람의 행동에 대해 그림이 훼손될 가능성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이라며 플러머에게 징역 2년 3개월, 홀랜드에게 1년 8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이에 항의하며 저스트 스탑 오일의 활동가 3명이 9월 27일에 고흐의 <해바라기>에또다시 수프를 끼얹었습니다. 이들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100명 이상의 예술가, 큐레이터, 미술사학자 등은 피비 플러머와 안나 홀랜드에 대한 선처를 촉구하는 공개 서한에 서명했습니다. 영국 그린피스와 예술 단체인 리버레이트 테이트가 주도한 공개 서한은 선고 하루 전에 발표되었습니다. 이 서한에 참여한 이들은 시위 행위가 예술적 표현의 하나이며 예술이 사회에 참여하는 오랜 전통과 이어진다고 주장했는데요. 플러머와 홀랜드의 행동을 단순한 기물 파손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사회적 양심을 일깨워온 성상파괴주의 iconoclasm의 일환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로버트 라우센버그, 구스타프 메츠거, 뱅크시와 같은 저명한 예술가들을 언급하며 120년 넘게 성상파괴주의는 예술계의 관행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왔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수프 캔을 활용한 플러머와 홀랜드의 시위는 이러한 역사와 연결되며, 이들의 행동을 범죄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활동가들의 행동이 작품에 해를 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술계와 법조계가 이러한 시위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과연 고흐의 해바라기 수난 시대는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Lady Gaga as Lee Quinzel, a.k.a. Harley Quinn. Courtesy of the Louvre Museum
3. 모나리자에 립스틱을 바른 레이디 가가
삐쭉삐쭉한 빨간 머리를 한 레이디 가가가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을 바라봅니다. 사모트라케의 니케가 서 있는 텅 빈 계단을 내려와 홀로 루브르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명화를 스치듯이 걷다가 <모나리자>를 발견합니다. 빨간 립스틱을 꺼내 <모나리자>의 입술 위에 조커의 미소를 덧그립니다. 물론 유리 케이스 위에 말이죠. 영상의 마지막은 “Time For a Folie à Deux”라는 문구로 장식됩니다.
이 1분 20초짜리 영상은 루브르 박물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곧 개봉하는 영화 <조커: 폴리 아 되>와 10월 16일에 오픈하는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 <바보들의 형상 Figures of the Fool>을 동시에 홍보하기 위한 기획으로 보입니다. 레이디 가가는 주연을 맡은 <조커: 폴리 아 되> 속 할리 퀸의 모습으로 루브르의 영상에 등장하는데요. 9월 27일에는 할리 퀸이라는 타이틀의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희대의 바보이자 광대로 조커와 할리 퀸을 위치시키며 전시의 맥락을 팝컬쳐로 넓히려는 루브르의 전략이 재미있습니다.
다만 앞서 다뤘듯이 시위에 의해 미술작품들이 공격을 받고 있는 요즘, 박물관이 이러한 행동을 미화하는 듯한 비디오를 제작한 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루브르 측은 비디오의 내용은 완전히 허구이며 모나리자를 보호하고 있는 방탄 케이스 앞에 한겹 더 보호유리를 설치한 후 촬영했다고 밝혔습니다.
새로 단장한 루브르 박물관의 나폴레옹 홀에서 열리게 될 <바보들의 형상>은 중세 시대부터 낭만주의 시대까지 다양한 작품 속에 등장했던 바보들을 통해 그들의 사회적인 기능과 역할을 읽어냅니다. 계몽주의 이후 미술 작품 속에서 사라져버린 바보들이 왜 다시 돌아왔는지 전시를 통해 짚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요. 전작 <조커>에서 세상의 부조리를 견디던 개인의 이야기가 ‘조커의 미소’를 걸치자 극적으로 변하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난 내 인생이 비극이라고 생각했어. 이제 와 생각해보니 이건 희극이야”라고 말했던 조커는 전시 속 바보들처럼 언제나, 어디에나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