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세 도예가에게 영감을 받은
조나단 앤더슨의 첫 디올 오트쿠튀르
지난 1월 26일, 조나단 앤더슨이 디올 오트쿠튀르 컬렉션으로 데뷔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앤더슨에게는 생애 첫 쿠튀르 컬렉션이기도 했습니다. 작년, 40세의 나이로 남성복, 여성복, 악세서리까지 모두 총괄하는 수장으로 부임한 그가, 올해 80주년을 맞이하는 디올이라는 하우스의 시간과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이었습니다.
디올, 꽃길만 걷자
디올 오트쿠튀르 런웨이에는 꽃길이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그냥 예쁜 꽃들이 늘어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장에서 매달린 꽃들은 마치 자연이 인공의 공간을 조용히 점령하는 듯한 풍경을 만들어냈죠.
꽃은 디올의 상징입니다. 하지만 앤더슨은 익숙한 것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답되 날카롭고, 우아하되 실험적인—그는 런웨이를 '쿠튀르 실험실'로 만들었습니다. "쿠튀르는 현재를 검토하고, 재구성하며,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렌즈"라는 그의 말처럼, 이번 컬렉션은 과거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무대였습니다.
75세 도예가가 패션쇼에 온 이유
패션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을 주목해온 이유는 그가 미술에서 받은 영향을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로에베의 런웨이에 트레이시 에민의 조각을 세웠고, 빈센트 반 고흐와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을 의상에 새겨넣기도 했습니다. 매 시즌마다 앤더슨이 어떤 아티스트의 작업에 영감을 받아 컬렉션을 풀어내는지 궁금해지곤 합니다.
이번 컬렉션에서 집중 조명한 아티스트는 막달레네 오둔도입니다. 75세의 세라믹 아티스트인 오둔도는 케냐 출신으로,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도예가입니다. 물레로 빚어낸 그녀의 도자기는 매끈하고 유려한 곡선으로 유명한데요, 마치 인체의 실루엣을 닮았으면서도 추상적이고 근원적인 형태를 띱니다.
앤더슨은 오둔도의 오랜 친구이자 열렬한 팬으로 알려졌습니다. 2021년 영국 GQ 인터뷰에서 그는 오둔도의 도자기 작품을 소개하며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우리 관계를 상징하는 이정표 같은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살아있는 조각가 중 한 명"이라는 찬사도 아끼지 않았죠. 이번 쇼에서 오둔도의 도자기가 지닌 조각적 긴장감과 곡선미는 드레스의 실루엣과 액세서리 디자인으로 고스란히 녹아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둔도는 직접 쇼장을 찾아 자신에게서 영감받은 옷들이 런웨이를 걷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18세기 초상화에서 운석까지
쿠튀르 주얼리도 미술사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로 가득했습니다. 18세기 이탈리아 로코코 화가 로살바 카리에라와 영국의 미니어처 초상화 대가 존 스마트가 그린 작은 타원형 초상화들—그 섬세하고 친밀한 형식이 브로치와 장신구로 재해석됐습니다.
진주로 프레임을 두른 브로치, 리본, 빈티지 헤드폰을 연상시키는 꽃 모양 장식. 그리고 원석과 운석 조각으로 만든 묵직한 팔찌와 반지까지. 지구에서 나온 것과 우주에서 온 것이 손목 위에서 만났습니다. 자연의 모든 모습을 담아낸 셈이죠.
이번 디올의 쇼 노트에 적힌 문장은 이번 컬렉션을 관통하는 핵심이 ‘완성되지 않음’이라고 말합니다.
“자연은 완성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직 변화와 적응, 지속만을 보여줄 뿐이다.”
런웨이를 넘어, 미술관으로
이번 컬렉션은 패션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쇼가 열린 바로 다음 날부터 일주일간, 파리 로댕 미술관에서 <형태의 문법 Grammar of Forms>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렸습니다. 앤더슨의 2026 봄여름 오트쿠튀르 컬렉션이 크리스챤 디올의 아카이브 피스들, 그리고 막달레네 오둔도의 세라믹 조각과 나란히 전시되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패션과 미술, 과거와 현재, 손으로 빚은 것과 몸으로 입는 것. 경계를 넘나드는 이 대화는 조나단 앤더슨이 디올에서 던지는 첫 번째 질문입니다. 쿠튀르는 옷을 넘어, 형태에 대한 탐구이자 예술에 대한 경의일 수 있다는 것. 런웨이를 걸어 내려온 도자기의 곡선은, 그렇게 우리에게 새로운 아름다움의 문법을 건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