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미술품 대신 공룡과 핸드백? 경매 시장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미술 시장이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세계의 주요 경매사들이 새로운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최근 수천만 달러에 낙찰된 공룡 화석과 에르메스 버킨백은 이례적 사례가 아닌, 수집 문화의 흐름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처럼 보입니다.
가장 최근 사례는 7월 16일 뉴욕 소더비 옥션에서 낙찰된 세라토사우루스 화석입니다. 예상가 600만 달러(약 83억 원)를 훌쩍 뛰어넘은 3,050만 달러(약 423억 원)에 낙찰되며, 공룡 화석으로 역대 세 번째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이 화석은 1996년 와이오밍의 발굴지에서 출토돼 오랫동안 유타의 고생물 박물관에 전시되었던 표본입니다.
이는 작년 뉴욕 소더비 옥션에서 현재 공룡 화석 최고가인 4,460만 달러(약 618억 원)에 낙찰된 스테고사우루스 ‘에이펙스 Apex’의 뒤를 잇는 사례입니다. 해당 화석은 미국의 투자자이자 컬렉터인 켄 그리핀이 구매해, 현재 뉴욕 자연사박물관에 전시 중이죠.
이번 경매에서는 화성에서 온 운석도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화성 운석으로 알려진 ‘NWA 16788’은 15분간의 입찰 끝에 530만 달러(약 73억 원)에 낙찰되며, 역대 가장 비싼 운석이 되었습니다. 무게 24.5kg에 달하는 이 운석은 과학적 희소성과 기원을 모두 갖춘 대표적 자연사 자산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또한, 공룡의 유해 중 파키케팔로사우루스의 거의 완전한 두개골과 티라노사우루스의 발 화석은 각각 175만8,000달러(약 24억 원)에 낙찰돼, 공룡 관련 유물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뜨겁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네 개의 고가 낙찰품 모두가 암호화폐 결제를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공룡과 운석, 그리고 디지털 자산이 만나는 이 새로운 경매 환경은, 과거의 구매 계층과 사뭇 다른 수집가의 유입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명품 핸드백의 경매 기록도 새롭게 쓰이고 있습니다. 지난 7월 파리 소더비 파리 옥션에서 고 제인 버킨이 실제로 사용했던 오리지널 버킨백이 1,000만 달러(약 137억 원)에 낙찰되며 역대 가장 비싼 핸드백으로 경매사를 장식했습니다. 이 백은 1984년 에르메스 CEO 장 루이 뒤마가 버킨과 직접 협업해 만든 단 하나의 시제품으로, 문화사적 스토리와 상징성이 결합된 상징적 오브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버킨백은 1994년, 제인 버킨이 에이즈 연구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판매한 이후 여러 개인 소유자를 거쳤습니다.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과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V&A) 전시에 포함되어 주목받은 바 있습니다.
낙찰자는 일본의 럭셔리 리세일 플랫폼인 Valuence의 CEO 사키모토 신스케로 밝혀졌습니다. 사키모토는 이 버킨백을 되팔 계획이 전혀 없으며, 이번 구매는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지속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내건 브랜드인 Valuence는 이 버킨백을 그 사명을 구현하는 상징으로 여기고 있으며, 일본에서 전시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상당한 마케팅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덤이겠지요.
공룡 화석과 버킨백과 같은 자연사 유물과 패션 아이템이 단순한 수집품을 넘어 문화적 자산으로 활발히 거래되고 있는 현상은 수집 시장의 구조가 다각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흐름은 상징성과 희소성, 스토리텔링이 결합된 오브제가 미술품을 대체 혹은 보완하는 새로운 자산군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비미술 분야의 부상은 단순한 일시적 트렌드가 아닌 것으로 여겨집니다. 공룡 화석과 버킨백의 공통점은 스토리 기반의 가치 창출에 있습니다. 예술 시장이 다시 활력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한 작가 중심의 판매 구조를 넘어, 콘텐츠의 내러티브와 상징성, 그리고 공공성과의 접점을 함께 설계해야 할 시점입니다. 다가올 가을 경매 시즌, 우리는 또 한 번 “공룡이 그림보다 비싼” 시대를 목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