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념미술 속으로 걸어 들어간 팝스타, 로드
미술계가 시즌마다 유독 좋아하는 뮤지션들이 있습니다.
작년에는 찰리 XCX였다면, 올해는 로드 Lorde일까요?
열여섯의 나이로 스스로 작사 작곡한 ‘Royals’로 그래미상을 수상하고, 데이빗 보위가 “음악의 미래다”라고 칭했던 뮤지션, 로드의 새 뮤직비디오가 화제입니다.
뉴질랜드 출신의 뮤지션, 로드가 신곡 <맨 오브 더 이어 Man of the Year>를 통해 20세기 미술에 오마주를 표현했습니다. 이번 뮤직비디오는 월터 드 마리아 Walter De Maria의 기념비적인 설치미술 작품인 <뉴욕 어스룸 New York Earth Room>을 연상시키는 무대에서 펼쳐집니다. 젠더 정체성과 자아 표현에 대한 주제를 시각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선택한 이 작품은 어떤 것일까요?
월터 드 마리아의 <뉴욕 어스룸>은 미술사에서 특히 난해하다고 알려진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1977년, 뉴욕 소호의 한 로프트에 설치된 후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전시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소호에, 대형 건물의 한 층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 한 점만 무료로 전시하고 있는데,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하고 있어, 아는 사람만 가서 본다는 작품입니다. 철학적이면서도 실현불가능해 보이는 작품을 구상했던 드 마리아의 이 작품을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 ‘종교적인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존재 자체가 기적이다’라는 감상평을 들을 수 있습니다.
<뉴욕 어스룸>은 흙(earth)만으로 구성됩니다. 335평방미터의 바닥을 56 센티미터 높이의 흙이 덮고 있습니다. 127톤에 달하는 무게입니다. 아티스트 월터 드 마리아는 이 비어있으면서도 채워진 공간을 통해 자연물과 실내 공간, 시간성과 물질성 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끔 만들었습니다. 총 세 점이 제작되었지만 두 점은 사라졌고, 마지막에 뉴욕에 설치한 작품만이 현재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로드는 이번 뮤직비디오에서 이 공간을 정밀하게 재현한 세트 안에서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로드는 이번 곡이 2023년 GQ ‘올해의 인물 Man of the Year’ 행사에 참석했을 때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된 경험을 통해 나온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뮤직비디오에서 로드는 상의를 벗고 여성성의 상징이자 금기로 여겨지는 가슴에 테이프를 붙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각성 상태에서 움직임을 배워나가는 듯한 몸짓을 이어가며 하얀 벽과 흙 뿐인 절제된 공간 속에서 정체성을 탐색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뮤직비디오 아래에 적힌 문장, “TRYING TO MAKE IT SOUND LIKE A FONTANA, LIKE PAINTING BITTEN BY A MAN, LIKE THE NEW YORK EARTH ROOM. THE SOUND OF MY REBIRTH.”에서 알 수 있듯, 월터 드 마리아 뿐만 아니라 루치오 폰타나의 찢은 캔버스 작품에서도 영감을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퍼포먼스는 개념 미술이 던져온 질문과 함께 자아에 대한 시적이고 상징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어스룸은 실제 작품이 아닌 재현된 세트입니다. 실제 <뉴욕 어스룸>은 미술 기관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이 관리하며, 관람은 투명한 차단막 너머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안에 들어가 흙을 밟거나 촬영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Dia의 큐레이터 마틸데 귀델리-귀디는, 이번 뮤직비디오와 관련해 연락을 받은 적이 없었으며, 재단과 연관이 없는 작업이라고 밝혔습니다. 귀델리-귀디는 영상에 대해 로드의 작품에 대한 재해석이 흥미롭다고 말하면서도 “어스룸은 퍼포먼스나 촬영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했습니다.
로드의 이번 앨범 커버를 제작한 포토그라퍼 혜지 신 Heji Shin이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아티스트인 점도 눈에 띕니다. 도발적이고 장르를 넘나드는 사진 작품으로 알려졌는데요. 전시 활동 외에도 구찌, 지방시, 톰포드의 캠페인을 촬영해 각광받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즈가 2019년에 주목해야 할 아티스트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었죠. 엑스레이로 골반을 찍은 이 앨범 커버 사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025년 버전의 ‘세상의 기원’일까요?
대중 음악이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의 문법을 빌려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과정 —
바로 그 지점이 오늘날 예술이 확장되는 방식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